생식에 관해 나는 환자로서 꽤 많은 경험을 한 편이다.
첫 쌍둥이 딸들을 시험관 시술을 통해 얻었고, 그 후 다사다난한 육아와 결혼 생활을 거치며 정관을 자르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런데 아내의 “막내 아들 있으면 얼마나 귀엽겠어”라는 꼬드김에 결국 고환 조직 채취까지 감행하여, 또다시 시험관 시술을 통해 귀여운 막내 아들을 얻었다.

목차
시험관 시술 — 자존심보다 아이가 먼저
요즘 결혼 트렌드를 보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정된 상황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첫 아이를 갖는 시기도 늦어지고 있다. 그만큼 생식 의학의 도움을 받는 부부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내 경우는 결혼 후 1년 정도 자연 임신이 되지 않자, 첫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의학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남자로서 자연 임신을 못 시켰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를 갖는 일 앞에서 내 자존심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시험관 시술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먼저 부부가 각자 생식 관련 몸 상태를 평가받는다. 공통적으로 피 검사를 통해 호르몬 관련 수치를 확인하고, 여성은 생식 기관의 구조적 문제를 평가하며, 남성은 정액 검사를 통해 정자 상태를 확인한다.
정액 채취 과정이 남자에게는 꽤 민망하다. 어두운 방에 푹신한 1인용 소파가 놓여 있고, 작은 TV에서 성인 영상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샘플을 셀프 채취해야 한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게 된다.
여성의 경우는 호르몬제 복용으로 배란 타이밍을 조정한 뒤, 과배란 주사를 스스로 투약하며 난자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병원에서 채취한다. 이 과정에서 OHSS(난소 과자극 증후군)로 고생하는 경우도 생기고, 굵은 주사바늘을 사용하는 난자 채취 자체도 상당히 아프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감내하는 아내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난자와 정자를 제공하면, 시험관에서 상태 좋은 난자와 정자를 만나게 하고, 그 중 좋은 수정란을 골라 급속 냉각시켜 보관한다. 이 과정에서 산부인과 의사뿐 아니라 배아를 다루는 테크니션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나는 처음엔 집 근처 로컬 난임의원에서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아 서울역 차병원으로 옮겼고, 이후 바로 임신에 성공했다.
정관절제술 — 숙련된 의사를 찾아 비뇨기과를 순례하다
정관절제술을 결심하고 나니, 어릴 때 포경수술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며 이유 없이 꺼려지는 마음이 들었다.
수술 자체는 비교적 간단하다. 양쪽 정관 근처 음낭에 국소마취를 충분히 한 뒤, 음낭 중앙에 작은 절개를 넣고 양쪽 정관을 전기소작술로 지져서 끊어준다. 절개 부위를 한 땀 봉합하면 끝이다. 다른 과의 수술이라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복잡한 과정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걱정이 하나 있었다. ‘정관 자를 때 근처 혈관이 함께 손상되면 어떡하지?’
환자 입장이 되고 나니 자연스럽게 숙련된 의사에게 받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집 근처 비뇨기과 여러 곳을 돌며 상담을 받기로 했다. 진료 전 오해를 방지하고자 내가 응급의학과 전문의임을 먼저 밝히고, 걱정되는 부분을 솔직하게 말한 뒤 적절한 답변을 듣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나도 경험이 많지 않아서 솔직히 두렵다”고 털어놓는 분도 있었고, 대뜸 화를 내며 나가라는 분도 있었다. 그리고 내 궁금증을 차분하게 풀어주신 분도 있었다. 나는 당연히 마지막 분에게 수술을 받았고, 결과도 깔끔했다. 이 과정에서 의외로 상식 밖의 의사들이 개원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기도 했다.
고환 조직 채취 — 아내의 꼬드김에 또 한 번
인위적으로 불임 상태가 된 뒤, 아내의 “막내 아들”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외부로 정자를 빼내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다시 차병원을 찾았다. 오랜만에 방문한 병원에서 눈에 띈 변화가 있었다. 외국인 부부들의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난임 시술은 비급여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비해 가격이 현저히 낮다 보니, 가성비가 좋다는 입소문이 글로벌하게 퍼진 것으로 보였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정관복원술과 고환 조직 채취술. 정관복원술은 불임 수술 후 5년 이내에 해야 성공률이 높고, 여러 번의 임신을 원할 때 고려할 만하다. 하지만 불임 상태를 유지하면서 1회성으로 임신을 시도할 거라면 고환 조직 채취술이 적합하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방법은 정관수술 때와 같았다. 국소마취 후, 상태가 좋은 쪽 고환에서 조직을 채취하는 방식이었다. 성인이 되어 비슷한 경험을 한 번 했던 덕분인지, 어릴 때 포경수술이 남긴 공포감은 생각보다 많이 사라져 있었다. 아내는 이번에도 과배란 유도와 난자 채취라는 고된 과정을 다시 감내해주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에서는 아이의 성별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막내 아들”을 바라며 시작한 시험관 시술이었지만, 아들일지 딸일지는 착상이 될 때까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아들이 착상되어, 이렇게 딸과 아들을 모두 곁에 두는 행운을 얻었다.
마치며 — 삶의 끝과 시작 사이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나는 직업상 삶의 끝자락에 놓인 환자들을 가장 많이 마주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실려 오는 사람들, 그 곁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가족들. 그것이 내 일상이다.
그런데 환자로서의 나는, 삶의 시작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험을 쌓았다. 난임 클리닉의 조용한 복도, 배아를 다루는 테크니션의 조심스러운 손길, 임신 성공 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 짧은 정적.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의사가 아닌 한 명의 아버지로서 겪었다.
의사도 환자가 된다. 진료실 건너편에 앉아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설명 한 마디의 무게, 의사의 표정 하나가 환자에게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정관수술을 앞두고 비뇨기과를 순례하던 그 경험은, 환자가 왜 “설명해주는 의사”를 찾는지를 몸으로 이해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삶의 끝과 시작 사이. 나는 오늘도 그 양쪽을 오가며 산다. 조금 색다른 위치에서, 의학을 바라보고 있다.
📚 참고문헌
– Vollweiter D, et al. “Vasectomy reversal or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y?” Urologe.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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