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 언론에서 ‘응급실 뺑뺑이’ 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19가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찾지 못해 여러 병원을 전전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표현인데, 사실 실제로 구급차가 병원을 물리적으로 뱅글뱅글 도는 것은 아니다. 병원 선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현장에서 대기하거나 이동을 최소화하며 전화로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로서, 그리고 직접 가족이 응급 상황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 현상이 왜 생기는지 내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보려 한다.

📋 목차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응급실에는 모든 과 전문의가 항상 대기하고 있지 않다
119를 통해 다양한 증상의 환자들이 응급실로 온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단독으로 진료가 마무리되는 환자들도 있지만, 타과 전문의의 협진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많다. 문제는 그 협진을 해줄 전문의가 야간이나 주말에 없는 병원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 급이 되어야 야간·주말 당직 전문의가 편성되는데, 그마저도 각 과별로 1명이 당직하도록 스케줄을 짜는 것조차 버거운 곳이 많다. 설령 해당 과 전문의가 당직 중이더라도, 이미 다른 환자를 처치하고 있다면 새로 온 응급 환자는 대기를 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이송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대한민국에 의사가 부족한 것 아닌가?”
정확히 말하자면, 전체 의사 숫자는 부족하지 않다. 사는 동네를 한 번 둘러보면 알 수 있다. 유동인구가 있는 상권에서 의원의 수는 카페 수와 맞먹는다. 문제는 야간과 주말, 응급 상황에 현장으로 나와줄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이유가 맞물려 있다.
하나는 수가 문제다. 현행 건강보험 급여 수가로는 야간·주말 응급 진료를 책임질 인력을 고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사 고용은커녕 해당 시간대 의료보조 인력 비용조차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다른 하나는 사법 리스크다. 응급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은 이미 상태가 나빠진 사람을 받아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형사상 문제가 없더라도 민사상 책임을 묻는 판결이 이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응급 질환을 자발적으로 맡겠다는 전문의가 줄어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의료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앞의 이야기가 인적 자원의 문제였다면, 이번엔 물적 자원 이야기다.
지역별 구급차 수, 구급대원 수, 응급 병상 수, 의료 장비 수는 모두 정해져 있다.
내 가족이 계단에서 크게 넘어진 적이 있다. 두피가 10cm 이상 열상을 입었고 소동맥 출혈이 있었으며, 외상 직후 거동이 되지 않아 신경학적 증상까지 동반된 상황이었다. 뇌출혈 가능성을 반드시 배제해야 하는 케이스였다. 나는 당연히 119를 불렀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현재 모든 대원이 출동 중이니 복귀할 때까지 대기해 달라” 는 말이었다. 약 20분 후에야 구급차가 연결됐고, 다행히 낮 시간대라 인근 대학병원에서 수용해 주었다.
지역별 통계를 기반으로 구급 자원을 배치하겠지만, 사람 일이란 한꺼번에 몰리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일시적인 자원 부족은 어느 시스템에서도 피할 수 없다.
병상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당연히 배후 진료과가 풍부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선호한다. 하지만 병상 수는 고정되어 있고, 의료 인력도 한정되어 있다. 내가 수련받던 병원은 규모가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상이 부족해 보호자 대기석, 심하면 복도에서 대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100% 해소는 불가능하다. 최소화하는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응급 증상의 기준을 좁혀야 한다
현행 응급의료법상 응급 증상의 범위는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실제로 응급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문 증상들까지 포함되어 있어, 시작점부터 과부하가 걸리도록 설계된 셈이다.
내 생각에 진정한 응급 증상은 크게 세 범주다.
- 신경학적 증상: 의식 저하, 마비, 경련, 갑작스러운 극심한 두통
- 심폐 증상: 흉통, 호흡곤란
- 출혈: 내부 또는 외부의 과다 출혈
이 증상들의 공통점은, 그 배경에 골든타임이 존재하는 질환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증상 자체가 골든타임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 증상들이 나타날 때 그 원인이 뇌졸중, 심근경색, 대동맥 파열, 뇌출혈처럼 치료 시작이 늦어질수록 비가역적인 손상이 빠르게 누적되는 질환인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물론 같은 증상이라도 덜 위급한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리고 119를 부를지 말지 고민하는 순간에, 일반인이 그 원인을 정확히 감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증상들이 나타났을 때는 최악의 가능성을 먼저 가정하고 움직이는 것이 맞다.
반면 현행 법에 포함된 나머지 증상들 중 상당수는 응급실 방문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분 단위로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쌓이는 성격의 증상들은 아니다.
지역 내 병원별 당직 진료 과목을 분산·지정해야 한다
이미 중증응급질환별 순환당직제라는 제도가 시행 중이다. 방향성은 옳다. 하지만 자율 참여형이고, 대상 질환의 범위가 좁으며, 무엇보다 당직자가 해당 과 전문의이더라도 세부 분과가 맞지 않으면 실질적인 치료가 어렵다는 현실이 있다. 예컨대 흉부외과 당직의가 폐 전문이면 대동맥 수술을 하기 어렵고, 신경외과 당직의가 척추 전문이면 뇌출혈 수술이 쉽지 않다.
수도권에는 대동맥 전문 흉부외과 전문의가 당직 체계를 갖추고 있는 병원들이 있지만, 그 외 지역에서 매일 이 수준의 전문 인력과 수술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결국 방향은 하나다. 특정 초응급 질환만큼은 거점 병원이 원활히 대응할 수 있도록, 인력·시설·행정 지원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것. 사법 리스크 면제와 수가 삭감 문제 해소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것 없이는 어떤 제도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마치며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나도 안다. 이상적인 응급 의료 체계가 갖춰지려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그리고 사회 전반의 인식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의료에 몸담고 있는 의사로서, 그리고 나 자신도 언젠가 응급 상황이 생길 수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바라는 것은 하나다.
대한민국의 응급 진료 시스템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 작동하는 날이 오기를.
📌 Dr. Edge의 더 많은 의학 이야기 → 전체 의학 글 보기
Dr. Edge는 의사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겪은 이야기들을 계속 써 내려갑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