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인어른이 흡인 폐렴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장인어른은 뇌경색과 파킨슨병을 오랫동안 앓아오신 탓에 거동이 전혀 불가능해 장애 1등급 판정을 받고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그러던 중 발열과 호흡 곤란 증상이 생겨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게 된 것이다. 나는 퇴근길에 아내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지금 병원에 갈 수 있는 가족이 없으니 보호자로 먼저 가달라는 부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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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는 걸 밝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의사로서 병원에 보호자 자격으로 방문할 때마다 늘 고민이 생긴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상대 보호자가 동료 의사라는 걸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부담을 느끼기 마련이다. 나 역시 진료 중에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인임을 알게 되면 설명 수위를 어느 정도로 맞춰야 할지 괜히 머뭇거리곤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처음부터 일반 보호자인 척 조용히 있기로 했다.
담당 의사가 치료 방향을 설명할 때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곁눈질로 모니터에 찍힌 활력징후와 엑스레이 영상을 슬쩍 훑으며 상태를 혼자 가늠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일반인에게 하듯 쉬운 말로 설명을 이어가자 속으로 ‘비밀 작전 순항 중’을 외치며, 치료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절대 복종에 가까운 순응도를 보였다.
대학병원 입원 절차, 직접 겪어보니
입원 수속을 밟으러 원무과에 가서는 낯선 장면을 마주쳤다. 이 병원은 응급실 비용을 먼저 결제한 후에야 입원 처리가 가능했다. 내가 일하는 병원은 퇴원 시 응급실 비용까지 한꺼번에 정산하는 방식이라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입원 동의서에 보호자 연대 보증 서명란이 있었는데, 막상 서명하려니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간호간병통합 병실의 현실 — 의사가 몰랐던 것들
병동에 올라가서도 낯선 경험은 계속됐다. 가족 관계와 비상 연락처를 꼼꼼히 파악하더니, 보호자가 상시 상주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내가 일하는 병원의 간호간병통합 병실은 거동이 어려운 환자도 간호 인력이 비교적 잘 챙겨주는 편인데, 이곳은 달랐다. 간호사들은 의학적 처치에만 집중했고, 기저귀 교체나 경구약 복용 보조, 흡입기 사용 후 뒷정리 같은 일들은 고스란히 보호자의 몫이었다.
욕창 예방을 위한 에어 매트리스도 보호자가 직접 의료기 상점에서 빌려와 간호 보조 인력의 도움을 받아 깔아야 했고, 체위 변경도 누가 알아서 챙겨주지 않았다. 의사로서 당연히 이루어지고 있을 거라 믿었던 것들이 실제로는 방치된 영역이라는 사실을 보호자의 시선으로 처음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비밀 작전 실패 — 보호자석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장인어른은 삼킴 장애로 인한 흡인 폐렴이었기에 비위관 삽관을 통해 식이를 공급하기로 했다. 인턴 선생님들이 술기를 시행하러 왔는데, 의사가 된 지 이제 두 달 남짓 된 신입의 서툰 손놀림을 보면서 나도 인턴 시절에 저랬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웃지 못할 일이 생겼다. 교수님 회진 때 드디어 정체가 탄로 난 것이다. 알고 보니 아내가 잠깐 병문안을 왔다가 내가 응급의학과 전문의라는 사실을 말하고 갔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간호사 앞에서 최대한 의학 용어를 자제하며 일반인 말투로 조심스럽게 처치를 부탁하고 있었는데, 병동 간호사들은 이미 다 알면서도 내가 애써 일반인인 척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것이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순간이었다.
좋은 의사란 무엇인가 — 교수님 회진에서 배운 것
교수님은 내가 의사임을 아신 뒤에도 과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충분히 전문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그 배려가 괜히 뭉클하게 느껴졌다. 나도 진료실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마주할 때 저런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의학적인 상태는 내가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한 입원 기간은 어디까지나 최소치였고 교수님은 그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보수적으로 말씀하셨다.
요양원 vs 요양병원 — 가족의 현실적인 고민
가족들의 가장 큰 걱정은 따로 있었다. 시립 요양원에 입소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장기 입원으로 퇴소 처리가 되면 요양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요양병원에 대한 내 인상은 좋지 않다. 예전에 잠시 일해본 경험에 비추어보면 환자를 사람으로 돌본다기보다 그저 처리해야 할 업무처럼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렇기에 가족으로서는 그나마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요양원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 마음은 의사의 판단이 아니라 순전히 가족의 마음이었다.
보호자석에서 배운 것들
입원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예후를 논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항생제 치료를 이어가며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다만 이번 경험은 내게 분명한 무언가를 남겼다. 보호자의 자리에 앉아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가족이 느끼는 막막함, 상태가 나쁜 고령 환자를 곁에서 지켜보는 보호자의 불안과 피로가 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장인어른이 하루빨리 회복하셔서 요양원에서 다시 편안한 일상을 보내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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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Edge는 의사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겪은 이야기들을 계속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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